대메뉴로 바로가기

분야별 정보

무덤

이방실장군묘

이방실장군묘
명칭
: 이방실 장군묘
소재지
: 가평읍 하색리
관리기관
: 이상렬(031-582-3238)
지정번호
: 도기념물 제 52호
지정일
: 1979년 9월 3일

이방실장군 (1362< 공민왕 11 년 >) 은 고려 후기의 무신으로 충목왕이 원나라에 있을 때 왕을 모신 공으로 왕이 즉위하자 중랑장이 되었고 , 공민왕 3 년 (1354) 에 대호군이 되어 선성에서 민란을 일으킨 다루가치 노연상 부자를 진압하였다 . 공민왕 8 년 (1359) 에 위평장 , 모거경 등의 홍건적이 4 만의 병력을 거느리고 의주 , 정주 , 인주 등을 함락한 뒤 인주에 웅거하자 안우 , 이음 , 이인우 등과 함께 철주에서 이를 격퇴하였다 . 홍건적 격퇴의 공으로 추성협보공신 ( 推誠協輔功臣 ) 에 봉해지고 추밀원부사에 올랐다 . 1362 년 총병관 ( 摠兵官 ) 정세운 , 김득배 , 안우 , 안우경 , 최영 , 이성계 등과 함께 개경을 수복하는 등 큰 공을 세워 중서시랑평장사에 올랐으나 김용 , 박춘의 모함에 의해 안우·김득배 등과 함께 살해되었다.

이정구선생묘

이정구선생묘
명칭
: 이정구 선생묘
소재지
: 상면 태봉리
관리기관
: 이용훈(031-585-1557)
지정번호
: 도기념물 제 79호
지정일
: 1984년 10월 25일

가평군 상면 태봉리 산 115-1 번지에 조성된 월사 이정구 선생의 묘소이다 . 월사 선생의 묘소가 제일 앞에 있으며 위로 인조 때 예조판서 , 대제학을 지낸 장손 이일상 ( 李一相 ) 의 묘가 있으며 , 그 위로 예조판서와 대제학을 지낸 장자 이명한 ( 李明漢 ) 의 묘가 있다 . 후손의 묘가 위에 있는 것은 순서대로 묘를 쓰면 역적이 나올 묘 자리라 하여 반대 ( 易葬 ) 로 묘를 썼다고 전해오고 있다 .

유적

월사집목판

월사집목판
명칭
: 월사집목판
소재지
: 상면 태봉리
관리기관
: 이용훈(031-585-1557)
지정번호
: 도유형문화재 제 113호
지정일
: 1988년 3월 21일

조선시대의 학자이며 문신이었던 월사 이정구 (1564~1635) 선생의 문집목판으로 장판각에 보존되고 있다 . 선생의 자는 성징 , 호는 월사 , 본관은 연안이다 . 선조 23 년 (1590) 문과에 급제 승문원에 등용되었고 , 병조 , 예조판서를 역임하고 우의정 , 좌의정을 지냈다 . 한문학의 대가로 서예에도 뛰어났으며 조선중기 4 대문장가 ( 신흠 , 장유 , 이식 ) 로 시호는 문충이다 . 월사집목판은 인조 14 년 (1636) 에 월사의 손자인 익상이 판각한것으로 현재는 모두 1,334 판이 보존 , 관리되고 있다.

조종암

조종암
명칭
: 조종암
소재지
: 조종면 대보리
관리기관
: 왕종락(031-585-1281)
지정번호
: 도기념물 제 28호
지정일
: 1975년 9월 5일

조종암이란 바위에 새긴 암각문 , 비석 , 단지 ( 壇址 ) 등의 유적을 통틀어 일컫는 것으로 암각문은 『朝宗巖 ( 조종암 ) 』『思無邪 ( 사무사 ) 』『日暮途遠 至通在心 ( 일모도원 지통재심 ) 』『萬折必東 再造瀋邦 ( 만절필동 재조심방 ) 』등으로 한 곳에 모여 있는 여러 개의 바위에 새겨져 있다 . 비석은 이 바위들의 바로 앞쪽에 세워져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제사를 지내는 대통묘가 있으며 그 앞으로는 맑은 조종천이 산굽이를 돌아 흐르고 있다 . 조종암은 조선 숙종 10 년 (1684) 에 우암 송시열 이 명나라 의종의 어필인 『思無邪 ( 사무사 - 생각에 사특함이 없음』를 새기고 또 효종이 대신에게 내려준『日暮途遠 至通在心 ( 일모도원 지통재심 - 해는 저물고 갈길은 먼데 지극한 아픔이 마음속에 있네 ) 』이라는 문구를 써서 당시 가평군수인 이제두에게 보내어 이를 정한 장소를 정해 새기도록 부탁하였다고 한다 . 이에 이제두 , 허격 , 백해명 등 여러 선비가 힘을 합하여 위 글귀와 선조의 어필인『萬折必東 再造瀋邦 ( 만절필동 재조심방 - 일만번 꺾여도 반드시 동력으로 흐르거니 명나라 군대가 왜적을 물리치고 우리나라를 다시 찾아 주었네 ) 』와 선조의 후손인 낭선군의 글 『朝宗巖 ( 조종암 - 임금을 뵈이는 바위 ) 』을 바위에 새기고 제사를 지낸 데서 비롯되었다 . 조종암을 이곳에 세우게 된 이유는 조종천이 있기 때문이다 . 조종 ( 朝宗 ) 이란 명칭이 여러 강물이 바다에 흘러 들어가 모인다는 뜻이면서 또한 제후가 천자를 알현한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. 이런 이유로 조종천이 조종암을 조성한 당시의 유신들에게 선택되어 숭명배청의 장소로 조성된 것이다 .

옛날물건

현등사 3층석탑

현등사 3층석탑
명칭
: 현등사 3층석탑
소재지
: 조종면 하판리
관리기관
: 현등사주지(031-585-0707)
지정번호
: 도유형문화재 제 63호
지정일
: 1974년 9월월 26일

현등사 경내 큰 돌축대 위 왼쪽끝에 세워져 있는 조선 초기의 3 층석탑으로 높이가 3.7m 이며 없어진 부분이 없이 상륜부까지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다 . 이 석탑은 방형 3 층석탑의 일반적인 특징을 보이고 있으나 , 고려시대의 석탑에서는 볼 수 없는 특수한 기단형식과 표면에 장식된 문양의 양식적 특징 등으로 보아 조선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.

현등사 3층지진탑

현등사 3층지진탑 이미지 준비중
명칭
: 현등사 3층 지진탑
소재지
: 조종면 하판리
관리기관
: 현등사주지(031-585-0707)
지정번호
: 도문화재자료 제 17호
지정일
: 1975년 2월 25일

이 탑의 지대석 에는 2 단의 괴임대가 있으며 네 귀의 합침이 뚜렷하다 . 탑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으며 탑몸돌에는 모서리 기둥이 표현되어 있다 . 지붕돌의 아랫쪽에는 지붕받침이 있으며 2 층이 4 단 , 3 층이 3 단으로 위로 올라갈수록 줄어드는 형태이다 . 낙수면의 경사가 비교적 완만하고 추녀는 수평으로 흐르다가 끝에는 급하게 반전되었다 . 이 탑을 지진탑이라 부르는 이유는 고려 희종 때 고승인 보조국사가 이곳을 지나다가 석등에서 불빛이 나옴을 발견하고 수 백년 동안 폐사되었던 사찰을 재건할 때 이곳 현등사 땅의 기운을 누르기 위해 세웠다는 전설이 전하기 때문이다 .

현등사 함허당득통탑 및 석등

현등사 함허당득통탑 및 석등 이미지 준비중
명칭
: 현등사 함허당득통탑 및 석등
소재지
: 조종면 하판리
관리기관
: 현등사주지(031-585-0707)
지정번호
: 도문화재자료 제 19호
지정일
: 2004년 11월 29일

이탑과 석등은 조선초인 1411 년에 현등사를 중창했던 함허대사의 사리탑으로 경내에서 약간 떨어진 서남쪽에 있는 팔각원당형부도 ( 八角圓堂型浮屠 ) 로 높이는 약 266cm 이다 . 둥근 탑신에 함허무준 ( 涵虛無準 ) 이 가로로 음각된 것이 아니라 세로로 함허당득통이라고 전서 ( 篆書 ) 로 음각되어 있다 . 팔각형의 지대석 위에 2 단의 8 각형 기단을 두어 전체적으로 3 단의 기단위에 둥근 탑신을 올려놓은 듯한 모습이다 . 옥개석은 8 모지붕으로 물매가 급하며 처마끝까지 반전없이 그대로 내려간다 . 상륜부에는 하단의 돌로 노반과 복발을 만들었으며 보륜과 보주도 역시 하나의 돌이다 . 함허대사가 입적할 때가 1433 년이고 , 이로부터 멀지않은 시기에 조성되었을 것이므로 이 부도는 조선초기 부동의 양식을 살피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.

현등사 소장봉사종

현등사 소장봉사종
명칭
: 현등사 소장봉사종
소재지
: 조종면 하판리
관리기관
: 현등사주지(031-585-0707)
지정번호
: 도유형문화재 제 168호
지정일
: 1998년 4월 3일

이 종은 조선조 15 대 임금인 광해군 11 년 (1619) 에 제작된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종으로서 전체높이가 77 ㎝ , 지름 59 ㎝이며 , 종의 세부이름을 보면 맨 윗부분을 종정 이라하여 용뉴 ( 용모양으로 새기고 고리형으로 만들어 틀에 걸수 있게 한 부분 ) 나 음통을 두고 , 그 아랫쪽을 견대·중대·하대로 3 분하여 구성하고 있다 . 이 종의 종정에는 음통은 없고 용뉴만 있으며 , 용뉴는 활기찬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쌍용으로 되어 있어 조선시대 범중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원래 봉선사에 있던 것을 현등사로 옮겨 온 것이다 .

현등사 수월관음도

현등사 수월관음도 이미지 준비중
명칭
: 현등사 수월관음도
소재지
: 조종면 하판리
관리기관
: 현등사주지(031-585-0707)
지정번호
: 도문화재자료 제 198호
지정일
: 2004년 11월 29일

현등사 수월관음도 ( 數月觀音圖 ) 는 20 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특이하게 검은바탕에 금은니로 그린 것이다 . 달을 배경으로 중앙에 원형의 두광 안에 관음보살은 기암괴석 위에 유희자 자세로 앉아있고 좌우로 정병과 버드나무 , 대나무가 묘사되었는데 , 이러한 형식은 고려후기의 수월관음도의형식에서 빌려온 것이다 . 하단에는 여의주를 든 용왕과 선재동자 ( 善財童子 ), 홀을 들고 원유관을 쓴 제왕이 있고 ,하늘과 물을 경계짓는 곳에 중단에는 구름을 수평으로 구획하고 사천왕상을 배치하였다 . 상단에는 분신화한 관음보살들이 유연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. 달과 물을 배경으로 검은 바탕에 금니와 은니를 교대로 사용하여 조성될 당시에는 화려하였음이 짐작된다 . 이 수월관음도는 20 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특이한 도상을 보여준다 .

무형문화제

지장 장용훈

지장 장용훈
명칭
: 지장 장용훈
소재지
: 청평면 상천리
관리기관
: 장용훈(031-581-0457)
지정번호
: 도무형문화재 제 16호
지정일
: 1996년 12월 24일

지장 장용훈 은 선친 장세권 씨 (1900 년생 , 1966 년 작고 ) 와 함께 전북 순창군 구림면 금천리 마을에서 한지를 제조 하였으며 , 6 .25 전쟁 이후 전주를 거쳐 임실군 청웅면 구고리에서 전통한지 " 신일한지 " 를 설립하여 한지를 제조해 오다가 가평군 청평면 상천리로 공장을 옮겨 지금까지 전통한지만을 전업으로 제작해 왔다 .장용훈 지장은 흘림뜨기 방식으로 한지를 만드는데 , 흘림뜨기란 발 한쪽에 끈을 매단 후 발을 앞뒤 좌우로 뜨는 것으로 종이의 질을 높여주는 방식이다 . 또한 전통한지를 고집하면서도 옛것에만 머물지 않고 끊임없는 연구와 실험을 통해 천연 염료를 사용한 색지와 각종 문양을 넣은 문양지 등 다양한 한지를 만들어 내고 있으며 두아들에게 한지공예를 전승하고 있어 3대에걸쳐 전통한지공예의 맥을잇고있다.

만족도 조사
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?

최대 200Byte (한글100자) 이내 (현재 )

담당자 정보

  • 담당부서 : 문화체육관광과
  • 담당자 : 장영희
  • 연락처 : 031-580-2064
  • 수정일 : 2016.03.08