청평리
청평은 글자 그대로 맑은 물의 본고장이다 . 청평댐이 이곳에 있고 , 청평 양수발전소가 있으며 , 청평천의 푸른 물결이 굽이돌아 흐르는 모습이 장관을 이루니 더욱 그렇다 . 그래서 그런지 이곳 소지명이 거의가 물과 관계됨은 이를 잘 증명해 준다 . 청평리는 험천동 , 청평천 , 갈오개 , 잠곡동등으로 나뉘어 있었다.
상천리
상천리라는 이름은 본래 감전 ( 甘田 ) 이었다 . 감전은 다시 윗감전 ( 上甘田 ), 아래감전 ( 下甘田 ) 으로 나뉘어졌으며 , 감전이란 말의 어휘가 변하여 감천 ( 甘泉 ) 이라 부르게 되고 ,1896 년 전국 지명을 한문식으로 통일할 때 감 ( 甘 ) 자를 빼고 상천 ( 上泉 ) 이라 적으면서부터 그렇게 불러온 것이다.
하천리
예로부터 말 ( 男 ) 이 울고 , 이리 ( 狸 ) 가 울고 , 토끼 ( 兎 ) 가 우는 지역은 그 지리적인 형상이 매우 아름답다는 뜻으로 풀이되어 왔고 , 운다고 하는 자체도 또한 아름다움의 극치를 그렇게 표현하여 왔다 . 우리 민족은 기뻐도 울고 , 슬퍼도 울어 왔다 . 산이나 들에서 노래하는 새들에게까지 노래한다 하지 않고 운다고 했으니 운다는 게 그렇게 좋았던 모양인가 . 하천리 ( 下泉里 ) 가 바로 그러한 지역으로서 말이 울고 , 토끼가 울고 이리가 운다는 이야기가 곳곳에 전해 온다.
대성리
일설에 의하면 대성이란 대승 ( 大升 ) 또는 대성 ( 大城 ) 으로서 높은 언덕?둔덕임을 의미하는 이름이라 하고 , 어떤 이는 이곳으로 흐르는 북한강 기슭이 마치 성곽처럼 이어져 있다는 데서 붙여진 것이라고도 한다 . 각읍지 자료에 의하면 이곳의 소지명을 대승리 ( 大升里 ) 라 했으니 승이 성으로 변한 게 아닌가 한다.
삼회리
삼회리에는 자연부락이 소야골 ( 蘇也谷 ), 화야리 ( 禾也里 ), 사기막 ( 沙器幕 ) 으로 나뉘어 있다 . 소야골은 본래 소 ( 沼 ) 아래편에 있는 마을 ( 골짜기 ) 이라는 뜻이며 , 쇄골은 사이골 ( 間谷 ) 또는 샛골의 변형어이며 , 소야곡과 화야리사이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. 화야리는 일명 큰골 ( 大谷 ) 이라 하고 또는 절골 ( 寺谷 ) 로도 부른다.
호명리
호명리는 범우리로 불렀는데 1865 년 전국 지명을 한문식으로 기록할 때 범은 범 ( 虎 ) 자로 쓰고 우리는 울 ( 嗚 ) 자로 써서 호명리라 명명한 것 이다.
고성리
고성리에는 자연부락이 고재 ( 高峴 ), 방터 ( 方垈 ), 양진 ( 養眞 ), 종고 ( 宗谷 ), 자잠등으로 형성되어 있다 . 고재는 지형이 높은 고개로서 양근 지방에서 가평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곳 고개를 넘어야 했는데 , 고개가 너무 험하고 길이 가파라서 길손들이 이르기를 고생 ( 苦生 ) 스런 고개라하여 고생의 고자를 따서 高峴또는 高城里라는 한문식 이름으로 부르게 된 것이란다.